"신숙주의 생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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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의 생가 유감"
  • 굿모닝호남
  • 승인 2020.08.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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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식(평론가,나주문인협회 초대 회장)

나주 노안 금안리에 신숙주의 생가가 있다. 폐가처럼 방치해놓은 생가를 보고 난 깜짝 놀랬다

한글을 창제하는데 음운학자로로 혁혁한 공로가 있는 분이고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아 영의정까지 지내신 분의 생가를 이렇게 방치해놓고 있는 것에 대해 내 자신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웠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해두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오랫동안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무인 숭상의 역사 해석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자리잡은 탓으로 보았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천 번이 넘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다.

피해망상적인 심리가 무인 숭상의 이데올로기가 우리도 모르게 민족 집단 심리의 기저에 자리 잡아온 것은 아닐까? 그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권력관계에 있어서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편협한 흑백의 이분법적인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아 온 것은 아닐까? 세조의 왕위찬탈 과정에서 빚어진 역사적 해석 때문에 신숙주는 변절자로 낙인찍혀졌다

세종의 둘째아들 수양대군이 문종이 죽고 13세의 조카 단종이 왕위를 계승받아 즉위하자 왕위 찬탈에 야심을 품고 정인지, 신숙주, 한명회를 같은 패당으로 기회를 노리다가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좌의정 김종서(金宗瑞) 등을 살해한 다음, 1455년(단종 3) 6월 드디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계유정란 때문이었다. 집현전 학자들이 이에 맞서 대항하였으나 수많은 학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신숙주는 이때 변절하여 목숨을 부지했다는 이유 때문에 한글창제의 업적은 고사하고 죽어서까지 그 오명을 남겨 후손들이 그 생가를 방치한 것이라고 볼 때 당시 수양대군에게 죽어야했다.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는 역사적인 희생물이 된 것이다.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 새로운 정권에 따른 사람은 모두 흑백의 논리로 반역자가 된다.

그러나 그 정권의 역사는 그 당사자는 역사의 주체로 인정하면서도 그 신하들은 새로운 정권에 협조 또는 살아남으면 변절자가 되고 과거의 업적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논리는 오랫동안 외침을 받아온 우리 민족적인 역사 해석의 흑백 이데올로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 살아남는 지식층은 모두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당시에 일본의 침략시기 일본정부에 반항하면 독립투사가 된다.

그리고 일본 독재자들이 일본에 대한 하는 민족주의자들을 그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살아남으려면 직간접으로 친일하지 않고서는 일제강점기에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을 핍박하는데 앞장서거나 그들의 편에 서서 민족을 배신한 사람을 친일파라고 하는데, 일본이 패망하고 국권을 되찾은 후 친일파들이 오늘까지 각계각층의 사회지도층 인사로 신분을 세탁하여 부와 권력을 독점해왔다.

해방 후 이러한 민족 반역을 자행한 친일파들을 척결하지 못하고 그들이 실권을 장악하게 자의든 타의든 간에 본의 아니게 우리들은 묵인해왔다.

그나마 6.25의 사변으로 동족 간에 서로 죽이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 후 독재정권을 타도를 외치는 4.19학생들을 제치고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남북 분단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어 남북 간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흑백의 역사해석은 오늘까지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해오고 있다.

이러한 흑백의 이데올로기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글은 세계적인 문자라고 자랑하고 세종대왕을 한글 창제하신 훌륭한 임금이라고 칭송하고 한글을 나라의 긍지로 여기면서도 그 한글을 만드는데, 공헌한 집현전 학자들 중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살아남는 자는 그 공적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흑백의 역사해석과 민족수난의 피해망상증이 자리 잡은 우리 민족만의 왜곡된 역사의식은 아닐까?

그리고 오랫동안 조선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왔던 유교질서 때문일 것이다.

남존여비 사상, 양반과 상민이라는 신분 차별 등 뿌리 깊은 유교 이데올로기는 기문을 중시하고 여자에게 정절을 강요했다.

남편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칠거지악으로 몰아붙이는 흑백의 논리를 강요하는 남녀의 불평등한 차별의식은 모두 유교가 낳은 흑백 논리의 산물이다.

여자가 부정한 짓을 저질렀을 때는 죽음을 강요받았던 유교질서는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으면서 신하들에게 책임을 묻는 어처구니없는 지배이데올로기를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세조의 왕위찬탈은 일차적으로 세종대왕의 탓이다. 아들을 잘 못 교육시킨 아버지로서의 세종대왕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고, 조카의 왕위를 빼앗아간 수양대군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왜 신하들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우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논리는 모순된 유교질서의 폐단이 낳은 병폐이다.

우리 국민들 은 이러한 모순되고 왜곡된 유교질서의식에 길들여져왔다.

이제 이러한 말도 안되는 강요된 유교질서의 역사의식에서 깨어나야 할 때이다. 

신숙주의 한글 창제의 업적은 인정되어야 한다. 신숙주가 수양대군의 편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한글학자를 외면하는 후진국의 역사의식을 이제 청산할 때이다.

오늘날까지 신숙주의 생가가 폐가가 되도록 내버려둔 것은 일차적으로 신숙주의 후손에게 있지만, 후손이 빈한하여 방치할 수밖에 없다면 국가가 마땅히 문화재로서의 후손들에게 알려야 마땅할 것이다.

신숙주 선생의 생가를 폐가로 방치해놓고도 어찌 선진 문화국민이라고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겠는가?

 다 쓰러져가는 생가를 방치해놓고도 우리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역사적 흑백논리로 정당화하는 일은 우리 민족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대로 방치해놓고 철면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외국인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무인 숭상의 이데올로기와 한번 낙인을 찍힌 인물은 복원하지 않으려는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진인한 유교문화가 낳은 폐단이며 문인의 천대문화는 군사정권이 낳은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문인을 업신여기고 총칼 들고 싸운 무인들만을 숭상하는 나라는 독재자들이 득세했거나 역사적으로 외침이 많았던 불행한 역사를 지닌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이러한 문화적 후진의 역사해석의 희생물로 방치한 신숙주의 생가는 우리나라가 문화적인 후진국임을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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